요즘 교실 안에서 조용한 혁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쩔 수 없이 교실에 잡혀 있을 수밖에 없던 아이들이 너무나 쉽게 인터넷의 바다로 빠져 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스마트 폰이 아이들 손에 쥐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스마트 폰을 이용한 도박 사이트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 작은 전화기가 MP3 플레이어, PMP, 전자사전 들을 대체하고, 나아가 이전에는 PC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검색 뿐만 아니라 간단한 문서 작성에서 동영상 제작과 인터넷 배포까지 한 자리에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사들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개인들을 상대하고 있는 셈 입니다.
정기적으로 제가 들어가는 학반 아이들의 스마트 폰 보유 숫자를 조사하는데, 작년까지는 분명 1/2선에 못 미쳤는데 올 해 초에 벌써 2/3 정도의 아이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반에는 4/5 정도가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스마트폰 보유 비율이 50%를 넘기면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해보아야지 했는데, 벌써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가지고 있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어마어마한 속도를 어떻게 따라 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마트 폰은 아이들에 앞서 제 삶도 바꿔 놓았습니다. 우선 화장실 갈 때 책 대신 폰을 들고 갑니다. 예전에는 집에 TV가 없어 연예계에 대해 무지했는데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을 꿰고 있습니다. 제 철학을 키운 건 8할이 좌변기였는데, 요즘은 안드로이드가 저를 가르칩니다. 당신의 삶은 어떠십니까?
새로운 기계가 나타나면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기계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교직에 들어온 이 후 계속 IT 관련 기사를 챙겨 보는데, 요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고 야단입니다. 도처에 많은 예언자들이 나타나 세상을 구할 구세주를 맞이하느라 분주한 듯합니다.
2011년 9월, 교과부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대통령께 보고하고요, 2012년 1월에는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애플의 마케팅 부사장 필립 쉴러(Philip W. Schiller)가 아이튠즈 유니버시티(iTunes University)와 애플 인 에듀케이션(Apple in Education)을 발표했습니다. 애플의 발표는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뉘었는데, 첫째로 교과서를 재창조하는(Reinventing of Textbooks) 아이패드 어플리케이션 iBooks 2, 둘째로 누구나 쌍방향적(interactive)인 디지털 북을 만들 수 있는 맥(Mac) 어플리케이션 iBooks Author, 마지막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iTunes U입니다.
삼성전자는 2012년 3월 31일 서울 삼성전자 홍보관 '딜라이트'에서 '제1회 삼성 갤럭시 탭으로 만나는 러닝허브(Learning Hub) 클래스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러닝허브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전용 신개념 교육 포털 서비스로, 갤럭시탭 10.1/8.9 LTE/7.7 LTE 등 태블릿을 통해 15,000여개의 유무료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SK 텔레콤에서는 T스마트러닝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교육 컨텐츠를 판매하고 있고 학습관리까지 해줍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초등학생들의 수가 줄어드는 탓에 구조적인 불황에 시달리는 학습지 업체들도 새로운 돌파구를 이 '스마트러닝'(Smart-learning) 시장에서 찾고 있습니다. 2012년 6월에는 ‘빨간펜’으로 유명한 교원그룹이 네비게이션인 ‘아이나비’를 만드는 팅크웨어와 손 잡고 교육용 태블릿 PC ‘마이패드’를 출시했습니다. 출판사인 시공 미디어에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는 사이트(http://www.i-scream.co.kr)에 대한민국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가입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공 미디어는 홈런(http://www.home-learn.com)이라는 이름의 전용 컴퓨터와 학부모 사이트를 열었답니다.
아, 숨 막히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제가 정보 담당 교사도 아니고 윤리 선생인데도, IT만 따라 가느라 교직 생활 16년을 다 보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정신없는 세상의 속도에 휘청거릴 때마다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무엇인가? 교사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뭘 기대하고 있는가? 등등.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우리의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때입니다.
Ⅱ. 교과부의 스마트 교육 추진 전략
1. 스마트 교육의 추진 과제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와 교과부는 2011년 6월 29일에 이명박 대통령께 「인재대국으로 가는 길, 스마트교육 추진전략」보고를 공동으로 올립니다. 이후, 교과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을 위원장으로 TF를 구성하고 2011년 7월 14일 전문가 간담회를 시작으로, 시·도교육청 대상 정책 설명회(‘11.8.26), 학계·민간 대상 오픈정책 설명회(‘11.9.1), 현장교사를 포함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스마트교육자문위원회(‘11.9.20) 등 의견을 수렴하여 2011년 10월 13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개하였습니다.
보도 자료에서 교과부는 스마트교육 비전을 「지구촌 공동체를 이끌어갈 창의성과 인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 육하여 실행계획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디지털교과서 개발 및 적용
- ‘12년까지 법·제도 정비 완료, ’13년까지 학습 모델 개발
- ‘15년까지 초·중·고 디지털 교과서 개발 완료, 서책형 교과서와 병행 추진
2) 온라인 수업 활성화
- IPTV, 사이버가정학습 등 기존의 경험을 살려 온라인 수업 활성화 촉진
- ‘15년까지 온라인 수업 도입 학교 비율 30%
3) 온라인 평가 제체 구축
- 클라우드 기반의 국가영어능력평가 시험 인프라 구축·확대
- 온라인 기초 학력 진단 도입 시도 : 4개 시·도(‘12년)→ 전 시·도(’15년)
4) 교육콘텐츠 공공목적 이용 환경 조성
- ‘12년까지 교육콘텐츠 저작물 공정이용 법적 근거 마련
- 교육콘텐츠 저작물 공공목적 이용 제공 : ‘15년까지 20,000건 이상
5) 역기능 해소를 위한 정보통신윤리교육 강화
- 인터넷 과다사용 대응 상담사 배치
- 역기능 해소 관련 예방교육, 콘텐츠개발, 연수과정 운영 시에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포함 또는 병행 운영하여 청소년의 건전한 가치관 확립
6) 교원의 스마트교육 실천 역량 강화
- 스마트교육 지원체제 마련, 스마트교육 연수 과정 개발·보급 (‘12년)
- 스마트교육 어드바이저 양성
7) 클라우드 교육서비스 기반 조성
- 스마트교육 표준 플랫폼 ISP 수립(‘12년) 및 구축(’13년)
- 클라우드 기반 단말기 전환 비율 : 30%(‘13년)→ 60%(’14년)→ 90%(‘15년)
2. 스마트 교육의 개념
보도자료에 의하면 스마트 교육은 “정보통신기술과 이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자원을 학교교육에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교육내용·교육방법·교육평가·교육환경 등 교육체제를 혁신함으로써, 모든 학생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재능을 발굴․육성하는 21세기 교육 패러다임”입니다. 김영애(2011)은 이에 대해 전통적인 학교체제는 교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속에서 제한된 내용의 서책형교과서를 가지고 강의식으로 3R(Read, wRite, aRithmetic)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스마트교육은 기존의 제한된 교육 영역이 확대되는 것([그림3] 참조)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스마트교육은 공간, 시간, 교육내용, 교육역량, 교육방법의 측면에서 기존의 영역을 확대하고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이며, “자기주도적으로 내 수준과 적성에 맞는 풍부한 자료와 ICT를 활용하여 재미있게 공부하는 교육”으로, 스마트교육의 키워드는 “개별화된 교육”, “맞춤화된 적시학습”, “창의성 중심 교육”입니다.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 실행계획에 대한 오픈 정책자료집에는 스마트 교육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 스마트러닝은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교육방법(pedagogy), 교육과정(Curriculum), 평가(Assesment), 교사(Teachers) 등 교육 체제 전반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지능형 맞춤 교수-학습 지원체제
- 최상의 통신 환경을 기반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소셜러닝(social learning)과
맞춤형 학습(adaptive learning)을 접목한 학습 형태
SMART - Self-directed : 자기 주도적 학습
Motivated : 맞춤형 학습을 통해 학습자의 흥미, 동기를 불러일으킴
Adapted : 맞춤형 교육제도, 교수학습 체제, 시스템 등
Resource enriched : 풍부한 교수-학습자료
Technology-embedded : 최신의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함
3. 스마트 교육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스마트교육 정책설명회 자료집, 2011)
1) 주입식 위주의 교육 현실
: 창의력, 문제해결력, 글로벌 역량, 공동체 의식 등 21세기에 요구되는 스마트 인재 양성 강화 요구를 외면
2) 변하지 않는 교실
: 학교의 자율성이 강화되고 선택의 폭이 확대되었으나 교실현장의 수업은 더디게 변화
3) 불편한 교육정보 서비스
: 학교 현장에 정보화 자원 투입을 통해 교육정보화가 확산된 반면, 기능 중심의 개별화되고 분산된 교육정보서비스로 수요자의 접근 불편
4) 낮은 학습흥미도
: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과 학습이 진행되면서 학업성취는 높으나 학습에 대한 흥미는 저조함
5) 교육 양극화
: 맞춤형 복지를 통해 공정한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있으나, 새로운 교육소외계층의 등장에 따른 교육기회와 정보접근의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발생
4. 스마트 교육으로 변화되는 학교교육
1) 학생 - ․ 디지털 교과서로 배운다.
․ 수준별 수업과 평가를 받게 된다.
․ 교실 공간을 벗어나 다양한 학습 활동을 한다.
2) 교사 - ․ 지식전달자가 아닌 학습조력자가 된다.
․ 자유롭게 교육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3) 학교 - ․ 모든 학교가 무선 인터넷 환경이 된다.
․ 모든 학교가 클라우드 기반의 교육서비스를 받게 된다.
Ⅲ. 스마트 교육과 창의력 개발 수업
1. 교사의 입장에서 본 스마트 교육
교과부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스마트교육’이라는 용어와 ‘Smart learning’이란 용어가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e-learning, m-learning, u-learning 등의 용어 사용에서 보듯이 education 대신 learning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이런 종류의 기술을 이용한 학습이 가르치는 교사보다는 학습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학습은 한 개인에게 학습 요구가 발생한 순간에 상황에 맞는 학습 서비스가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연속적으로 제공되고, 다른 사람과 원할한 의사 소통을 하며 과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과 결과가 실시간 추적되고 관리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적인 학습 경험을 IT 기술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e-learning, m-learning, u-learning, smart learning입니다.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이 학교체제 또한 산업혁명과 국민 국가의 소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교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규모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기능을, 정부 입장에서는 젊은이들에 의한 사고 및 범죄를 줄일 수 있는 기능을,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고용의 안정과 직업 교육 수행이라는 기능을 충족시켜 온 시스템이었습니다. 근대적 학교가 나타나기 전에는 교육은 지배층을 위한 교양 교육이나 전문 기술 전수를 위한 도제 교육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근대 학교 제도는 많은 사람을 짧은 시간에 많은 지식을 공급하기에는 적절한 시스템이었습니다. 대중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획일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자 교육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생겨났습니다.
산업 사회가 정보 사회로 바뀌어 교육에 대한 개인과 기업의 요구가 바뀌면서 국가에 의해 주도된 현 학교 체제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경제 연구소를 필두로 해서 많은 사회 세력들이 학교 교육에 대해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획일화되고 전체적인 학교 체제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있고 나아가 창의성을 말살하고, 기업의 입장에서도 현 학교 체제가 새로운 사회 변화와 글로벌 경쟁 중심의 경제 체제에도 맞지 않는 뒤떨어진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더해 학교를 둘러싸고 좌파와 우파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평준화 교육이 개인과 집단의 자유로운 경쟁과 혁신을 저해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교육을 둘러싸고 ‘국민+국가’와 ‘기업+자본’, ‘개인+사회’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도권은 국가가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전통적인 교육은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교사(교육 주체)가 교실(물리적 환경)에서 학생(교육의 대상)에게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의미의 교육에서는 핵심이 ‘잘 훈련된 교사’가 됩니다. 그런데 이 ‘교사 Teacher'는 양성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고, 계획했던 방향대로 양성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막대한 유지비가 들어갑니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약점은 국가에 의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았던 전교조에 대해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도 이런 측면이 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교육은 가정 교육과 개인간 교육이 주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교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손 본 국가는 없습니다. 학교 시스템을 포기할 수 없는 근본 이유는 인간이라는 근본 한계인 젊은이들의 몸 때문입니다. 이 몸들을 관리하는 새로운 방식이 나오지 않는 한 현 학교체제는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교과부에서 제시하는 스마트교육의 비젼도 교실 혁명이지 학교 혁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TED에 소개되는 새로운 교육 형식에 대한 실험은 인도나 몽골 등 제3세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근대적인 의미의 학교 체제는 성립된 적이 없거나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주 한국 교육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대학교육과 전통적 사립학교 교육을 제외한 공교육 체제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지식 정보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미래 학교 모델에 대해서도 많은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미국은 너무 넓어서 학생들을 한 장소에 모아놓고 가르치기에 드는 비용이 높습니다. 그래서 플로리다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FLVS(Florida Virtual School)라고 불리는 온라인 학교가 운영되기도 합니다. 이 학교는 특별한 학위나 자격증을 수여하지는 않지만, 125개가 넘는 인증된 강의 코스를 가지고 있고, 교과서는 없으며, 모든 강의와 관련한 자료들은 온라인으로 제공된다고 합니다. 학생들과의 학습관리도 웹과 이메일, 그리고 전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일부 과목의 경우에는 게임의 형태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입시나 각종 시험을 대비한 동영상 강의 형태의 e-learning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약 절반의 학생들이 PMP를 이용해 서울 유명 학원 강사의 강의 동영상이나 메가스터디 등 교육 업체, 또는 EBS 강의 동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형태의 e-learning은 현 학교 체제에 변화를 주지 않았고, 오히려 특유의 입시 중시 교육 문화를 강화시키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교육의 형식이 바로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탁월한 교육 컨텐츠가 온라인으로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서 교사가 하는 역할들을 모두 대체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특히 학생 관리라는 측면이 보다 더 강조될 것으로 저 개인적으로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의 이해 수준, 배움의 정도, 학습 목표 도달 과정과 단계들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과 교육적 조치들이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서는 물리적인 학교 공간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시간에 그 많은 애들이 어디에 가겠습니까? 그리고 집에 있으면 학부모들이 감당해야할 정신적 상처들과 막대한 정신과 치료 비용은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애들이 다 촛불 들고 나오면 정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국에서는 학교가 비용이 저렴합니다.
2. 교실 속에서의 변화
전통적인 교육은 정식 교과나 커리큘럼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중심이 되는 환경에서는 비형식적 학습이 활발해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 나이가타 공과대학(NIIT)의 물리학자인 수가타 미트라(Sugata Mitra)의 실험에서 시작이 된 HiWEL(Hole-in-the-Wall Education Ltd.) 교육 프로젝트입니다. 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남자 아이는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 퀴즈 쇼에서 많은 문제에 답을 찾아냅니다. 이와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인도와 여러 나라들에 세워진 HiWEL 학습 센터들에서도 놀라운 학습 성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림]
이 같은 성공 사례는 학습이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고, 인간이 본래 학습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확신시켜 줍니다. 교육이란 거칠게 말하면 지식 혹은 정보의 전달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인간을 통해서만 가능했고, 문자와 책이 시공간적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도록 해주었으며, 인터넷이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굳이 교사라는 인적 요소를 끼워 넣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굳이 넣는다면 비용 대비 효과가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교사 없이도 배웁니다. 현재 아이들이 학교 교사에게 복종하는 것은 학문적 권위나 인격 때문이 아니라 국가에게 위임 받은 평가와 선발에 관한 권한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서 습득하고 있는 지식들도 단지 대학 입시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입시가 끝나면 그동안 공부했던 책들을 교실 창밖으로 집어 던지는 행동으로 이런 생각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메가스터디 강사보다 못한가요?”라는 질문을 처음 받은 지도 어언 10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이런 식의 질문을 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잘 가르치는 선생보다는 자기 말을 들어주는 선생이 더 좋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가르치는 선생이 좋다는 아이들은 이미 마음속에서 당신을 ‘선생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smart learning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 교육에 관한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동영상이나 오디오 등 디지털로 변환된 정보를 학습자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노출(expository)적 유형 유형. 현재까지 대부분의 온라인 교육이 이 유형에 속합니다. 둘째 학습자가 온라인 교육도구를 조작해서 여러 지식을 쌓는 방법인 능동(active)적 유형. 에두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시도되는 게임식 학습 프로그램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협업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을 배우는 형태인 상호작용(interactive)적 유형입니다. 최근 강조되는 SNS 등을 이용해 학습하는 social learning이 이 유형에 속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스마트교육을 실행하신다고 하면 아마 이 세 유형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유형을 선택하시더라도 꼭 고려해야 할 것이 상호작용적 요소입니다. 선생님들이 사용하실 스마트 디바이스가 가진 최대 강점이 바로 이 상호작용적 요소이고, Web 2.0이라 부르는 기술의 변화 추세도 협업과 공유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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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협업과 공유가 수업 시간에 잘 안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가수면 상태에 있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협업과 공유는 수업과는 다른, 대개는 상반된 부분에서 발생합니다. 어떻게 해야 최소한 수업 시간에라도 협업과 공유가 일어나도록 할 수 있을까요?
3. 스마트교육과 교사의 역할
학교에서 진로 시간을 이용해 학습법 학습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가 안 들어도 될 듯한 학생들은 눈 똥그랗게 뜨고 있고, 꼭 들었으면 하는 학생들은 졸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 기술은 나중 문제이고, 우선 학습에 대한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게 먼저라는 것이 3년간의 ‘학습법 학습’ 실행 연구 결론 입니다. 아이들은 학교 교육 내용과 자신의 삶이 너무 멀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험도 치지 않는 진로 수업 시간에는 학습 요구가 발생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된다든지 입학사정관 면답 때 활용할 수 있다든지, 자기주도 학습 전형에 포트폴리오로 사용한다든지 하는 말로 설득해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이 수업에서 제가 관찰한 것 중 가장 특이한 것은 학습법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도 도장 찍어주기에는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과제를 하고 도장을 찍어야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학습법에 관한 자료와 정보가 널려있는데도 아이들이 찾아보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여러 정보들을 교사가 취합 정리 분석해서 각 개인에게 맞는 가장 좋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는 아이들을 지치게 합니다. 이런 저런 사항들을 고려해 볼 때 2학기 진로 수업에 ‘레벨’과 ‘인증’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해야 하고, 여러 가지 자료를 더 찾고 정리해야 하며, 따로 애니어그램이나 학습 코칭이라는 새로운 요소도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에듀팟에 올리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기안하여 결재도 받아놓아야 합니다. 동료 선생님이 사서 고생이라며 걱정을 해주십니다.
교사가 주어진 교과 교육 과정을 뛰어넘고자 마음을 먹으면 당장 부딪히는 문제가 이런 것들입니다. 더 이상 교사는 내용 전문가로서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교육 과정 전문가, 정보 큐레이터 역할까지도 감당해야 합니다. 한두 번 시도해보신 분들도 이내 포기해버리고 교육청이나 교과부에서 만들어 내려보내는 프로그램을 찾게 됩니다. 제 생각에 스마트교육 전략이 가장 많은 저항에 부딪힐 부분이 이 점이 아닌가 합니다. 도구만 배운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도구를 다 배우고 실행에 옮길 때 발생합니다.
4. 놀이 요소와 창의적 문제 해결 학습 모형(FPSP)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창의성 시범학교 운영 담당자로 계명대학교 김영채 교수님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연구 진행 과정에 창의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연구 주제가 교과 수업에서의 창의성 교육이었습니다. 그 당시 느낀 점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창의성 교육은 귀납식이라는 것과 학생의 배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의적 문제 해결 학습 모형(FPSP)은 TORRANCE 창의적 문제 해결 프로그램('Torrance FPS')에서 나온 것으로, TORRANCE 창의적 문제 해결 프로그램('Torrance FPS')는 E. Paul Torrance(1973)에 의해 프로그램이 창설되어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41개 지회가 운영되고 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계명대학교 김영채 교수가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창의력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연구 프로젝트에서 저는 아래와 같은 FPSP 6단계 모형을 적용하여 1학년 도덕 교과를 재구성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ㅿ문제의 이해
토픽에 대한 연구
?
미래 장면을 읽고 분석하기
?
1. 도전들을 확인해 내기
?
2. 핵심 문제의 선정
?
ㅿ아이디어 생성
3. 해결 아이디어의 생성
?
ㅿ행위를 위한 계획 세우기
4. 판단 준거의 생성과 선택
?
5. 판단 준거의 적용
?
6. 행위 계획의 개발
창의적 문제 해결 학습 모형(FPSP)에 맞춘 수업에서 학생들은 학습 또는 탐구 주제에 대해 공부를 한 후, 팀별로 교사가 제시한 미래 장면을 읽고 문제를 정의합니다. 문제를 확인하면 가장 중요한 문제와 부차적 문제를 구분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 과제로 확정합니다. 발산적 사고 과정을 통해 해결 아이디어를 찾고 아이디어를 분류하고 판단 기준에 대해 팀별로 토론하고 논쟁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해결 아이디어를 사용해서 구체적인 문제 해결 시나리오를 작성합니다. 프로젝트 수업 과정에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없어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만일 그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제가 수시로 학생들의 스마트 폰 보유 비율을 점검한 이유가 이것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고등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 2학기 전체를 재구성하여 FPSP의 6 단계 ‘1. 도전들을 확인해 내기 - 2. 핵심 문제의 선정 - 3. 해결 아이디어의 생성 - 4. 판단 준거의 생성 - 5. 판단 준거의 적용 - 6. 실행 계획의 개발’ 단계를 적용시켜 본 것입니다.
구 분
필수 학습 내용
문제해결관련
비고
영역
중단원
소단원
적용
여부
적용 단계
Ⅱ.
민족통일문제와 통일
한국의
모습
1.
민족분단과 남북한 사회현실
(1)민족분단의 과정
․ 한반도의 분단현실에 대한 인식
․ 분단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이해
․분단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의 습득
○
정보
수집
(2)민족분단과 남북한 사회문화의 비교
․ 남북한 언어현실에 대한 이해
․ 남북한 의식주 생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인식
․ 남북한 규범 및 가치에 대한 인식
○
정보
수집
(3)민족분단의 극복방향
․ 한반도 분단 극복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 분단 극복의 장애 요인에 대한 이해
․ 분단극복의 기본방향에 대한 탐색
○
문제
확인
2. 남북한의 통일 정책과 통일의 과제
(1)우리의 대내외적 통일환경
․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화
․ 주변국의 통일 환경 조성
․ 남북한의 통일 환경 조성
×
과제해결이후
(2)남북한의 통일정책 비교
․ 남한의 통일 정책
․ 북한의 통일 정책
○
아이
디어
생성
(3)통일실현을 위한 우리의 자세
․ 통일의 신념과 의지 함양
․ 평화적 방법의 통일을 위한 노력
․ 통일을 위한 고등학생의 할 일 실천
○
행위
계획
3.
민족공동체의 번영과 통일한국의 모습
(1)민족공동체의 당면과제와 해결
․ 세계화 속의 한민족 공동체의 의미 이해
․ 한민족 공동체의 당면과제 이해
․ 한민족공동체의 과제를 나의 과제로 이해
○
행위
계획
(2)통일한국의 미래상
․ 통일 이후 예상되는 문제 이해
․ 통일한국이 나아갈 방향 탐색
○
행위계획
(3)세계 속의 바람직한 한국인상
․ 21세기 세계변화추세와 통일 한국출현의 의미 이해
․ 국제사회에서 통일한국의 역할 이해
․ 통일한국을 이끌어 갈 한국인상 이해
○
행위
계획
Ⅳ. 나오면서
요즘 기업 교육에서 많이 활용하는 Action learning이라는 교육 방법에서 보면 교육이 기업 경영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Action learning의 최대 장점이 교육과 업무 현장이 분리되지 않고, 기업의 모든 영역을 포함할 수 있으며, 기업 성과와 직접 연결되는 사안을 중심으로 하여 학습 동기와 도전 정신을 촉진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런 Action learning의 특징들은 교실 수업에도 참고할 만한 점이 많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든 변화하는 상황을 관찰하고 주체적으로 대응해가는 교사의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한 법입니다. 학교 교육 현장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그동안 학교 현장을 뒤흔든 변화들만 봐도 열린 교육, ICT, 창의성, 디베이트 등 ,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물론 철학 전통에서는 존재피구속성(存在被拘束性:Seinsgebundenhei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물질 조건이 인간의 생각을 결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변화 앞에서 겸허히 새겨야 할 말입니다. 특히 최근의 스마트 교육 혁명은 “기술이 주로 학습의 도구나 주변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었던 기존의 정책과는 달리 기술 요소가 핵심이 되고, 기술이 담고 있는 철학이 사회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점이 간접적으로 교육의 변화, 사람간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스마트교육의 기저에 담겨있”습니다(김영애, 2011).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참고 문헌
․김영애(2011), 우리의 교실혁명 스마트교육의 현황과 발전 방향, 한국교육개발원
․김영채(2008), 중등 창의성 교육 능력 개발 직무연수 자료집, 대구시교육청
․전략위․교과부(2011). 다함께 성장하는 사회 구현을 위한 스마트러닝 활성화 계획. 미발간.
․김현철(2011) 스마트교육 콘텐츠 품질관리 및 교수학습 모형 개발 이슈. KERIS 이슈리포트
요즘 젊은 층들 가운데서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게임은 대다수 젊은이들 사이에 생활의 일부이자 문화가 됐습니다만 아직도 밤늦게까지 게임에 몰두하는 자녀를 보고 흐뭇해 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중·장년층은 게임을 좋게 보면 단순한 오락, 나쁘게 말하면 시간낭비로 생각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소설가인 이화여대 교수 이인화씨가 게임하는 사람과 게임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이같은 간극을 메워 줄 만한 장문의 글을 시사 월간지 신동아 8월호에 기고 했습니다.
그는 “가상현실에서도 정의가 승리 해야…그래서 ‘바츠 해방전쟁’ 일으켰다”는 제목의 이 글에서 한국의 온라인 게임을 전세계적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핵심 콘텐츠로 규정하고 "게임이라는 장르를 넘어 이제까지 인류사에 존재한 어떤 이야기 예술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의 이야기를 출현시킨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리니지2’ 제1서버(바츠 서버)에서 2004년 6월에 발발한 ‘바츠 해방전쟁’을 세밀하게 분석한 뒤 "이 스토리를 체험한 상당수 ‘리니지2’ 사용자야말로 귀환하지 않는 영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을 ‘폐인’이라고 조롱하지만 그들은 이를 웃어 넘기며 온라인 게임이 만든 매트릭스로 날마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인화 작가는 "이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이 어떻게 현실로 돌아와 세계를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융합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깊이 고려해야 할 과제"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도깨비 뉴스에 소개하기에는 너무나 긴 글이지만 주말을 맞아 나들이 계획이 없는 독자라면 한번쯤 정독을 해볼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판단돼 전문을 소개합니다
“가상현실에서도 정의가 승리 해야…그래서 ‘바츠 해방전쟁’ 일으켰다”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은 인공적으로 구현된 게임 속 가상 현실세계에 수천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해 마치 배우들처럼 각자의 역할을 맡아 움직이는 게임이다. 이러한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중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것이 바로 ‘리니지2’다. 화제가 됐던 ‘리니지2’의 ‘바츠 해방전쟁’ 분석을 통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핵심 콘텐츠로 각광받는 온라인 게임의 문명사적 의미를 짚어본다.
디지털스토리텔링(Digital Storytelling)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산업현장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콘텐츠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창작 기술로 이해되고 있다. 컴퓨터 게임, 애니메이션, 디지털 영화, 웹 광고, 사이버 커뮤니티, 웹 에듀테인먼트, 웹 뮤지엄 등이 현재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활발하게 적용되는 콘텐츠다.
최근 연구자들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국제 표준을 한국에서 개발된 온라인 (컴퓨터) 게임에서 추출하려 시도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핵심 콘텐츠다. 온라인 게임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개념에 정확하게 일치하면서 동시에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가장 활발하게 시도되는 분야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세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의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다. 이후 한국은 발달한 IT 인프라와 반도체, TFT, LCD, 모바일 분야 세계 1위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온라인 게임의 발전을 선도해 2004년 현재 세계 시장의 31.4%를 장악하고 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까지 서비스돼 ‘IT 한류(韓流)’라는 현상을 만들어냈으며 현재 ‘오프라인 게임의 온라인화’라는 세계 게임산업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량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질적인 면이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인류의 이야기 예술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게임학(ludology)의 세계적인 석학 에스펜 아세스는 ‘퍼스트 퍼슨(First person)’(2004)이란 저서에서 “한국의 다사용자 게임 ‘리니지’는 게임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만들어낼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게임이라는 장르를 넘어 이제까지 인류사에 존재한 어떤 이야기 예술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의 이야기를 출현시켰다. 그것은 “1000시간 이상 지속되며 고조되는 갈등 상황에 스스로 주인공으로 참여함으로써 사회 정의와 인간적인 자유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사용자(독자)”라는 매우 특이한 이야기다.
온라인 게임에서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본질이 드러난다. 프리드리히 셸러의 말처럼 인류 사회는 인간의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구성됐지만 그 사회에 조화를 부여하는 것은 예술이 만드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취향이다. 미래의 인류는 바로 한국의 온라인 게임과 같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공동의 취향을 학습하고 사회 정의와 자유를 향한 연대감을 구축해 갈 것이다.
게임산업은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2003년 현재 전체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25%를 차지한 상태다.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2005년 현재 약 770억달러(81조원)로 추정된다.
12개국 206만명의 사용자
게임산업은 게임 콘텐츠가 구현되는 플랫폼(게임 구현 장비)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 표1
<표1>에서 보듯이 온라인 게임은 사용자가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서버 컴퓨터에 접속해서 즐기는 게임이다. 수십만에서 수만명의 이용자가 동시에 접속해 게임을 진행한다.
이 같은 온라인 게임 진행 방식을 클라이언트/서버(Client/server) 시스템이라고 한다. 사용자는 비디오 게임처럼 CD나 DVD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회사의 공식 홈페이지에 계정을 등록하고 게임 프로그램, 즉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한다. 다운로드한 프로그램을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한 뒤 인터넷으로 게임 회사의 서버에 접속해 게임을 한다. 사용자는 대개 자신이 접속한 시간에 따라 일정액을 지불한다(‘리니지2’의 경우 1개월에 2만9500원).
이러한 클라이언트/서버 시스템은 규모성(salability)과 지연성(tardiness)의 두 가지 면에서 제한된다. 규모성이란 사용자 수가 증가할수록 게임이 처리해야 할 정보 규모가 커지는 것을 뜻하며, 지연성이란 사용자 수가 증가할수록 게임의 응답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수천 내지 수십만명이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은 여러 개의 서버에 정보를 분산해 운영한다.
세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 상용화에 성공한 한국은 이와 같은 분산 서버의 네트워크 기술과 게임 운영 관리(GM) 기술, PC방, 초고속통신망(ADSL), 모바일 빌딩의 ‘과금(課金) 시스템’ 등 보완적 인프라에서 세계적인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다.
△ 표2
한편 게임은 플랫폼뿐만 아니라 구현되는 콘텐츠의 장르에 따라서도 구분된다(표2).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게임시장의 발전을 이끈 것은 온라인 게임 플랫폼에 롤플레잉 게임 장르가 결합된 형태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즉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말한다.
‘리니지’ ‘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라그나로크’ ‘RF온라인’ ‘구룡쟁패’ ‘메이플스토리’ ‘디아블로2’ ‘길드워’ ‘마비노기’ ‘조이 시티’ ‘레드 문’ 등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서 일반인이 흔히 온라인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MMORPG다. MMORPG는 현재도 9세부터 29세에 이르는 연령대의 게임 사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게임 장르다.
MMORPG는 수천명 이상의 사용자가 동시에 인공적으로 구현된 게임 속 가상 현실세계에 접속해 마치 역할극의 배우처럼 각자의 역할을 맡아 움직이는 게임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용자의 캐릭터는 여러 가지 사건을 겪은 경험의 수치(경험치)에 따라 점점 더 높은 레벨로 성장한다. 캐릭터의 성장은 그가 입는 옷과 사용하는 무기, 습득하는 스킬 등을 통해 가시적으로 표현된다.
이 같은 MMORPG 가운데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모델로 주목되는 게임은 ‘리니지2’다. 엔씨소프트사(社)의 ‘리니지2’는 ‘리니지’의 후속편으로 제작된 세계 최초의 풀 3D 온라인 게임으로 2005년 현재 대규모 다중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게임이다.
2005년 3월22일 현재 ‘리니지2’는 북미, 유럽, 중국, 일본, 한국 등 세계 12개국에 206만명의 사용자와 12만명의 동시 접속자를 가지고 있다. ‘리니지’와 ‘리니지2’를 합치면 사용자가 400만명, 누적 회원 수가 1950만명이다. 이 숫자는 전세계 온라인 게임 사용자의 50.9%를 차지한다.
경험 수치에 따라 점점 높은 레벨로
처음 ‘리니지 2’의 가상현실에 접속한 사용자는 캐릭터 리스트에 아무것도 없는 가상공간과 만나게 된다. 셀렉션 스크린(selection screen)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디자인한다. 이러한 선택에는 종족, 성별, 외모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 키, 피부색깔 등 다양한 디테일이 포함된다.
이러한 조형 과정을 통해 사용자는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매우 유착한다. 현실 공간에서 나의 외모와 이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의 성장 또한 상당 부분 부모와 사회적 조건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만든 나의 캐릭터는 그 외모와 이름, 그리고 성장 과정까지 어느 하나도 나의 노력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레벨 1의 캐릭터로 태어난 사용자는 종족에 따라 각기 다른 장소에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며 게임 안에 등장하는 NPC들(Non-Player Character·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을 클릭하면 여러 가지 수행 과제인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 퀘스트를 수행하면 경험치와 돈을 보상으로 받는다. 다른 플레이어와 협동해 사냥하면서도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일정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높아져, 캐릭터의 능력이 향상되고 더욱 수준 높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더욱 전문적인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플레이어 집단인 혈맹을 창설해 군주가 될 수도 있다.
혈맹은 군주와 일반 혈맹원으로 구성되는데, 군주의 SP(스킬 포인트)와 아이템, 돈을 지불해 레벨을 올린다. 혈맹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혈맹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혈맹이 거느릴 수 있는 최대 인원도 늘어나며 혈맹간 전쟁도 벌이게 된다. 전쟁을 통해 혈맹은 그 세력을 넓힐 수 있으며, 4레벨 이상의 혈맹은 성(城)을 차지할 수도 있다. 성을 차지하기 위한 혈맹들의 전쟁이 바로 공성전이다.
민중 계층의 봉기
‘리니지2’ 세계에서 일어난 여러 스토리 가운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제1서버(바츠 서버)에서 2004년 6월에 발발한 ‘바츠 해방전쟁’이다. ‘리니지2’에는 32개의 서버가 있다. 이 가운데 바츠 서버는 역사가 가장 오랜 서버로, 사용자들이 개발사에 대해 항의 시위를 하는,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 서버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에서 발생한 숱한 스토리 가운데 현실세계의 일간지에 보도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의 세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리니지2’의 세계는 레벨에 따른 계층적 차별성이 뚜렷하게 제시되는, 철저한 계층 사회다. 레벨에 따라 입는 옷과 쓰는 무기 등 아이템이 다르며 출입할 수 있는 지역도 다르다.
‘리니지2’의 스토리 세계에는 현실 역사의 ‘민중’에 비유될 만한 계층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40레벨 이하의 캐릭터들로 규정되는 이 민중 계층은 2003년 11월25일 현재 전체 ‘리니지2’ 플레이어의 85.9%를 차지한다. 한편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캐릭터이면서 지배혈맹에 소속된, 현실 역사의 ‘군사 귀족 계층’에 비유될 계층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레벨이 높아져 세력을 형성한 혈맹에 들어가면 멋진 무기에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성에서 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낮은 레벨의 군소 혈맹원은 수시로 공격당해 죽고 들판과 음습한 동굴, 무너진 산채에서 혈맹 모임을 연다. 사냥터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레벨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상충현상을 일으켜 혈맹 전쟁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쟁혈맹의 혈맹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55레벨 정도가 돼야 하며 DK혈맹과 같은 이름 있는 혈맹에 가입하려면 최소 61레벨에서 65레벨이 돼야 한다. 따라서 혈맹전쟁은 그만큼 레벨이 높은 전쟁혈맹 사람들만의 관심사다.
이처럼 계급구도가 뚜렷한 ‘리니지2’ 세계에서 민중이 대대적으로 봉기한 2004년 6월의 바츠 해방전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바츠 해방전쟁은 위협하면 굴복하고 때리면 죽는 민중이 권력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중의 고조된 열광은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승리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승리는 크라토스(Kratos), 즉 거칠고 원초적인 물리력이 지배하던 세계에 에토스(Ethos), 즉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 이념을 출현시켰다. 이후의 ‘리니지2’ 세계에서는 어떤 권력도 이 같은 에토스의 전제 없이는 피지배계층의 복종 내지 권력에 대한 묵인을 얻어낼 수 없다는 진리가 확인됐다.
지배혈맹의 압제와 세금인상
이러한 바츠 해방전쟁의 발발에는 두 가지 경제·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요인은 10%에서 15%로 바뀐 2004년 2월16일의 세율 인상이었다. 세율이란 성을 차지한 지배혈맹과 개발회사가 상점에서 거래되는 모든 물품대금의 일정 비율을 나누어 갖는 것을 말한다. 높은 레벨의 사용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다른 사용자와 직거래하므로 세율인상에 구애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상점에서 무기와 옷, 마법방어를 위한 장신구, 각종 물약과 마법서를 사야 하는 40레벨 이하 사용자에게 세율 인상은 생계를 위협하는 변화였고, 이러한 불만은 세금을 징수하는 지배혈맹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해방전쟁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둘째 요인은 극에 달한 정치적 압제였다. 바츠 서버에는 1000개가 넘는 혈맹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쟁혈’이라는 전쟁혈맹과 ‘친목혈’이라는 사교혈맹의 경계는 매우 유동적이다. 쟁혈 내부에도 사교 활동이 있고 친목혈도 다른 혈맹에 전쟁을 선포하면 전쟁혈이 되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리니지2’ 세계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전쟁혈이다.
전쟁혈은 다른 혈맹보다 더 레벨이 높고, 더 오랜 시간 활발히 접속하며, 더 PvP 전투(플레이어간 대인전)에 능한 혈맹원을 영입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이러한 세력 경쟁에서 승리한 혈맹이 지배혈맹이 된다. 때로 최강의 조직을 구축한 거대 지배혈맹의 군주는 다른 유력 혈맹과 단합해 공포와 전율로 얼룩진 철권통치를 구현할 수도 있다. 바츠 서버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지배혈맹의 철권통치였다.
2003년 7월6일 오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 직후부터 바츠 서버를 지배해온 것은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일명 DK) 혈맹이었다. 이미 ‘리니지1’에서부터 활동해 조직을 정비한 상태에서 ‘리니지2’로 넘어온 DK혈맹은 가장 먼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혈맹원을 규합한다. 그 뒤 DK혈맹은 ‘리니지2’의 신화적 고대 세계에서 집단으로 구현되는 인간 의지의 강렬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사냥터 통제로 이윤 독점
이들은 ‘통제령’을 통해 좋은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사냥터를 봉쇄해 다른 사용자의 출입을 막았다. 나아가 ‘척살령’을 발동해 피의 독재를 전개하면서 자신이 독점한 사냥터에서 ‘오토’라고 부르는 자동 매크로 프로그램 사냥을 통해 24시간 아덴(리니지 세계의 통화)을 벌어들였다. 또 그때그때 유력한 다른 혈맹과 적절히 제휴함으로써 대항 혈맹들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분쇄했다.
게임 사냥터 통제는 ‘리니지1’에서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리니지1’에서 사냥터 통제를 통한 이윤 독점을 학습한 DK혈맹은 일찍부터 ‘통제’와 ‘오토’를 은밀히 행해왔다. 그러나 2004년 3월 거대 3혈맹 단결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확인한 DK혈맹은 아예 ‘통제’와 ‘오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여기에 반항하는 사용자들을 살해하는 ‘척살’을 확대했다.
이와 같은 권력의 횡포, 아무런 가치 이념도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물리력의 발현은 일반 민중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했다. 이것이 세금 인상에 따른 민중계층의 광범위한 불만과 결합하면서 마침내 바츠 해방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바츠 해방전쟁의 서전(序戰)은 2004년 5월9일 붉은혁명혈맹이 DK혈맹 군대가 방어하는 기란성을 점령하고 “세율 0%”를 선언한 것. 이 기적 같은 승리는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층 민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단독으로 DK혈맹에 전쟁을 선포했다가 무참하게 진압당한 바 있던 더킹혈맹, 순수한 마법사들만의 혈맹인 해리포터혈맹, 수원성혈맹, 하드락혈맹, 리벤지혈맹 등 지배혈맹은 아니지만 상당한 세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혈맹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들이 ‘바츠동맹군’을 결성하고 ‘반3혈(反三血)’의 기치를 높이 들자 민중은 하나 둘 그 옆에 모여들어 자발적으로 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 사용자들은 DK혈맹을 중심으로 한 3혈 연합군의 ‘화살받이’가 돼 무수히 죽어갔다. 민중 계층이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방안은 인해전술이다. 버프(공격 및 방어 능력의 일시적 증강)와 스킬의 화려한 효과음과 함께 일방적으로 상대를 도륙하는 DK혈맹 전사의 모습과 수십명이 낙엽처럼 죽어가는 일반 사용자의 모습은 고대적 파토스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자유의 깃발 아래 죽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들의 정의감을 자극했다. 반3혈측의 절박한 호소문이 인터넷에 오르자 비슷한 폭압에 시달리던 다른 서버의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버리고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바츠 서버로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이들은 바츠 서버에서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기에 이들의 캐릭터는 형편없는 저레벨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혁명의 상퀼로드(긴바지를 입은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불렀다.
다른 서버 사용자들이 참전해 바츠 서버가 만성적인 접속 장애에 시달리던 이 시기에 많은 호소문이 나타났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바츠 동맹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짜리 캐릭이라도 수십명이 모여서 DK연합에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큰 타격을 줄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가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 겸댕이대왕, <호소문 - 전 서버 유저들이여 궐기하라> (2004. 6.16.)
내복단의 주류는 하루 이틀 정도 육성한 레벨10 전후의 캐릭터다. 뼈단검을 든 이들의 공격력은 5~10포인트(한번 공격할 때 상대가 입는 대미지)다. 이들이 상대하는 DK혈맹원은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고수로 이들의 공격력은 한번 시전시 1000~1300포인트에 이른다. 공격 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이는 어떤 전술로도 상대가 될 수 없는 차이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에서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은 고립된 개인의 상상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뛰어넘는 집합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을 출현시킨다. 이것은 마치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낮은 차원의 지능을 갖지만 더듬이를 병렬로 연결한 그 집단의 지능은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최적의 행위와 최적의 해답을 찾아내는 이치와 같다.
내복단 구성원이 찾아낸 최적의 전술은 DK혈맹 전투부대의 측후방으로 돌아가 가장 취약한 힐러(치유술사)를 ‘모탈 블로’라는 스킬로 100여 명이 동시에 찌르는 방법이었다. 내복단 한 사람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적의 힐러에게 대략 40의 대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100명의 화력은 40×100=4000 포인트에 이르며 한꺼번에 4000포인트의 체력이 감소한 힐러는 손쓸 겨를도 없이 전사한다. 이렇게 힐러가 전사하면 버프와 힐(대미지를 입은 체력의 회복)을 받지 못한 DK 전투부대는 중심을 잃고 그 뒤에 달려드는 내복단에 의해 각개격파돼 죽어갔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리니지2’의 채팅창은 띄어쓰기를 포함해 24자를 치면 꽉 찬다. 또 현실적으로 동일한 작전 행동을 할 수 있는 단위는 9명에 불과하다. 내복단은 이런 제한된 의사소통 환경에서 제한된 수단을 이용해 수백명, 수천명에게 작전 명령을 내리고 반응하면서 현실의 전투 군단처럼 신속하게 기동했다. 그러면서 적에 대한 기만, 공포감 조성, 일사불란한 이동과 과감한 종심돌격, 때로는 독창적인 전술행동을 실현했다. 이러한 기동전의 놀라운 방식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의 집단 지능이 얼마나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준 실례다.
이러한 집단 지능은 단순히 전투에 그치지 않았다. 피에르 레비(Pierre Levy)의 지적처럼 집단 지능은 개체적 차원의 상황을 연계해 더욱 고귀하고 상승적인 가치를 생산한다. 이 시기 ‘리니지2’ 사용자의 가슴에 발생한 의분과 정열, 정의를 향한 열망은 단순한 놀이로서의 게임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물론 게임의 데이터베이스 위를 이동하는 사용자의 움직임은 가상적이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다운로드한 프로그램 속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체험이 사용자의 인생이듯 가상공간의 체험도 사용자의 인생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이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적 경험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럽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그러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온라인 게임은 가상현실의 세계입니다. 자신의 캐릭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이란 걸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임이지만 게임도 하나의 가상현실이고 그곳에도 정의가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트릭스 영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매트릭스는 네오라는 영웅에 열광하는 것이지만 리니지2는 자신의 캐릭이 리니지2라는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과거 저는 ‘리니지1’에서 아주 작은 혈의 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소한 문제로 당시 거대 혈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했지만 저는 아무 말 없이 그 쪽 군주에게 정식 혈전을 요청했습니다. 질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학살당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싸워보자는 혈원들의 패기와 용기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비굴해지기 싫었습니다. 전 묵묵히, 제 장비를 긴급처분해 혈원들에게 물약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가보았지요. 일방적인 학살이었습니다. 하지만 혈원들은 단 한 명도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싸웠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로하더군요.
전 아직도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비록 저 자신 한 명은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어떠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2004. 6.17. ‘리니지2’ 게임포 게시판 호소문의 세 번째 댓글)
내복단의 활약
이처럼 내복단은 ‘리니지2’라는 가상현실을 현실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동지애’라는 고귀한 가치에 연대하는, 현실보다 더 숭고하고 더 인간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바츠 해방전쟁에서 내복단이 만들어낸 에토스, 윤리적 가치 이념은 온라인 게임과 같은 현실의 가상현실화가 더 높은 단계의 인간화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가상(Virtuality)은 단순히 ‘실물처럼 보이는 거짓 형상’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눈앞에 구체적으로 현시한 것이다.
2004년 6월의 대접전 기간에 DK혈맹은 어떤 여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했다. 내복단은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바츠 서버로 밀려들었으며 5개 성을 중심으로 주요 전쟁터는 양측의 시체로 뒤덮였다.
7월에 접어들자 바츠동맹군(혁명군)의 전열은 더욱 강고해졌다. 붉은혁명 혈맹과 리벤지혈맹을 중심으로 32개 전쟁 혈맹이 ‘바츠 해방’의 깃발 아래 집결했고, 무수한 내복단이 이들의 외곽을 수호했다. DK연합군은 야전에서 패퇴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강철 같은 DK연합군 5개 아성 가운데 최초로 오랜성이 함락됐다. 이 과정에서 전 서버 최강의 전사인 DK연합군의 아키러스가 순수한 저레벨의 내복단과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다.
급기야 6월28일 3혈 동맹의 주축이자 DK혈맹 다음의 거대 혈맹이던 제네시스혈맹이 사냥터에서 벌어진 사소한 충돌을 빌미로 DK혈맹과 결별하고 바츠 혁명군에 투항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당황한 DK혈맹은 급히 정(情) 혈맹과 위너스혈맹을 회유해 4혈 동맹을 결성했지만 지배연합의 전열은 크게 흔들린 뒤였다.
그리하여 7월17일 바츠 해방전쟁의 분수령이 된 아덴 공성전이 벌어졌다. 이 시기 바츠동맹군은 40개 혈맹에 이르렀으며 오랜성을 점령한 상태였다. 리니지 월드의 중북부에 자리잡은 오랜성은 비록 궁벽한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60레벨의 엘프족 전사가 윈드 서커의 버프를 받고 달리면 10분 안에 사냥꾼 마을을 거쳐 수도 아덴성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시 바츠동맹군은 7인의 지휘관이 이끄는 엉성한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지휘관들은 오랜성 성주이자 리벤지 혈맹의 총군주 ‘나리타’, 붉은혁명혈맹의 총군주 ‘눈물을 감추고’, 해리포터 혈맹의 총군주 ‘박셩만만쉐’, 더킹혈맹의 총군주 ‘혜원낭자’, 수원성혈맹의 총군주 ‘칼데스마’, 하드락혈맹의 총군주 ‘엘븐백기사’, 그리고 가장 나중에 합류해 바츠동맹군 사이에 묘한 긴장을 감돌게 한 제네시스혈맹의 총군주 ‘칼리츠버그’다.
'리니지2'를 개발한 온라인 게임 업체 엔씨소프트 직원들
혁명이 태양처럼 빛나던 날
이토록 많은 혈맹이 집결했지만 바츠동맹군은 아직도 수적으로 DK연합군에 비해 열세였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바츠 서버의 독특한 정치적 정세에서 비롯된다. 바츠 해방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현실적으로 DK연합에 가입하거나 양해를 얻지 않고서는 자신의 캐릭터를 52레벨 이상 육성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52 이상의 레벨 업을 위해 꼭 들어가야 하는 사냥터를 DK연합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파편화된 사용자들은 물질적 안락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흔히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그 결과 전쟁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고레벨 사용자들은 이 시기까지도 DK연합에 속해 있었다.
이렇듯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DK연합군 전사들은 DK혈맹의 총군주이자 지배4혈의 총군인 ‘shadow여솔’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shadow여솔’ 밑에는 혈맹전쟁 참전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신의 기사단혈맹의 총군주 ‘지존군주’, 위너스혈맹의 총군주 ‘푸른 전사’, 정혈맹의 총군주 ‘만월의 폭군’이 그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츠동맹군이 대승을 거둔 아덴 공성전은 기만전술의 승리였다. 그토록 많은 내복단이 참전했음에도 바츠동맹군은 전투가 시작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실제 전력에서 DK연합군보다 우위에 있지 못했다. 불리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이 전투에서 바츠동맹군 수뇌부는 기만전술을 선택했다.
기만전술이란 위장과 은폐의 기획 의도를 가진 군사행동이다. 전쟁에서 일정 기간 적을 속이기 위해 대병력을 양동작전에 투입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작전은 없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는 “기만전술이 계획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하면서 “지휘관은 책략을 동원하기보다 쌍방 전투력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오로지 필연성만을 고려하는 ‘엄숙한 열의’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수적 열세를 기만전술로 극복
이런 관점에서 바츠동맹군의 승리는 기적이었다. 수많은 내복단 가운데 첩자가 있어서 채팅창의 귓속말에 단 한 줄만 입력했다면 발각될 수 있었을 기만전술이 두 번이나 성공했다. 서로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내복단 동지들은 현실 공간에서보다 더 철저한 도덕성을 보여주었다.
바츠동맹군의 기만전술은 공성 등록부터 시작됐다. ‘리니지2’의 게임 규칙에 따르면 양군은 공성 시작 24시간 전에 공격할 성으로 가서 수성 등록과 공성전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 마감 10분 전. 제네시스혈맹을 제외한 바츠동맹의 모든 혈맹은 오랜성에 수성 등록을 했으며 제네시스혈맹만이 아덴성에 공성 등록 절차를 밟고 있었다. 바츠동맹군은 누가 봐도 DK연합군의 탈환전에 대비해 오랜성 방어에 전념한 것처럼 보였다.
등록 마감 8분 전. 제네시스혈맹마저 공성 등록을 취소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에 DK연합군은 아덴성 수성 등록을 취소하고 오랜성으로 이동하는 한편 바츠동맹군의 위치를 맹렬하게 찾았다. 이 시간 사라진 제네시스혈맹과 바츠동맹군 본대는 사냥꾼 마을 근처에 매복하고 있다가 DK연합군의 이동 정보를 받자 즉시 아덴성 마을로 달려갔다.
등록 마감 3분 전 바츠동맹군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DK연합군은 할 수 없이 오랜성에 공성 신청을 했다. 같은 시간 바츠동맹군은 아덴 공성에 26개 혈맹이 신청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아덴성에 수성 등록한 것은 DK의 1개 라인혈맹에 불과했다. 양동작전의 기만전술로 바츠동맹군은 공성에 참여할 수 있는 병력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7월17일 오후 비교적 공성이 쉬울 것이라던 바츠동맹군의 예상은 빗나갔다. DK연합군은 오후 7시부터 아덴성 주위에 끝없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엄청난 숫자로 대오를 정비하고 전략적 요충지마다 바츠동맹군의 진격을 봉쇄하기 위한 요격진지를 구축했다.
숙련된 DK연합군은 성 입구 중간에 칼과 단검, 창을 든 격수 부대를 배치하고 양 옆으로 넓게 궁수 부대를 포진시킨 학익진(鶴翼陣)을 구축했다. 이것은 성문으로 돌진하는 바츠동맹군을 일점사(一點射)로 저지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진법이었다.
8시. 결전이 시작되자 최전선에 DK연합군의 맹장 아키러스가 이끄는 ‘전 서버 최강의 전투 부대’ 아키러스 파티(9명)가 나타났다. 아키러스 파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츠동맹군 3개 파티를 전멸시키고 바츠동맹군의 최전선 진지를 파괴했다. 전력의 우열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났다. 오직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만이 바츠동맹군을 버티게 하고 있었다.
9시. 무수한 희생에도 바츠동맹군은 진지조차 세우지 못했다. 공성군측이 1시간이 지나도 진지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전황이다. 공성군측이 전사했을 때 진지가 있으면 그 진지에서 부활할 수 있지만 진지가 없으면 두 번째로 먼 마을에서 부활해 10여 분을 달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츠동맹군의 두 번째 기만전술이 시작됐다.
9시10분. 바츠동맹군은 부서진 진지를 뒤로하고 산지사방으로 패주하기 시작했다. DK연합군의 눈에 이와 같은 패주는 자연스럽게 보였다. 상대는 총사령관조차 정해지지 않은,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혈맹들의 엉성한 결합체였고 내복만 달랑 걸친 오합지졸의 군대였다. DK연합군의 맹공에 1시간 동안 버틴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9시20분. 승기를 잡은 DK연합군은 진군했다. 패주했지만 적의 주력이 완전히 분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군 수뇌부는 결정적인 승리를 획득하기 위해 아덴성 주변의 전장을 떠나 오랜성으로 추격전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대비해 CC지역의 레드군단 궁수부대와 DD지역의 화이트군단 궁수부대를 잔류시켰다.
그러나 이때 바츠동맹군은 패주한 것이 아니었다. 패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만전술을 폈던 것이다. 바츠동맹군은 거의 흩어지지 않고 전장 외곽에 집결해 매복했다.
오랜성으로 진군한 DK연합의 대군은 리벤지혈맹을 비롯한 소부대만이 지키고 있는 오랜성을 맹공했다. 외성문 바깥쪽에 공성 진지를 구축하고 공성골렘(성문을 부수기 위한 공성무기)을 뽑아 눈 깜짝할 사이에 외성문을 부수어버렸다. 이 공세는 외성문 안쪽에 압살롬 진형(원형 일점사 진형)을 구축하고 있던 리벤지 혈맹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리벤지혈맹은 총군주 ‘나리타’와 라인군주 ‘야적’ ‘어시장’ 등 지휘부가 직접 나서서 뚫린 외성문 안쪽에서 절망적인 심정으로 방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DK연합군의 공격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아덴성의 급전이 오랜성 공성부대로 날아든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아덴성의 주전장에서는 DK연합군의 주전력이 이동하자 바츠동맹군이 즉각 다시 기동했다. 먼저 칼리츠버그의 진두지휘 아래 아수라처럼 분전한 제네시스혈맹이 DD지역의 화이트 군단 궁수부대를 격파했다. 제네시스혈맹은 한 라인을 보내 @지역에 진지를 구축하는 한편 나머지 병력으로 전장을 가로질러 CC지역 레드군단 궁수부대의 배후를 엄습했다. 레드군단 궁수부대는 앞뒤로 포위돼 전멸했다.
곧이어 바츠동맹군은 공성골렘을 소환했고 프로핏의 버프를 모두 받은 공성골렘은 불과 몇 분 만에 외성문을 파괴하고 내성문마저 부수어버렸다. 아덴성으로 쇄도한 바츠동맹군은 망루와 성벽을 지키던 위저드(공격수 마법사) 부대를 격파하고 내성으로 뛰어들었다. 내성을 지키던 DK 골드라인 혈맹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원 사살됐다. 이 전투에서 지배4혈의 총군 shadow여솔도 전사했다.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DK연합군은 다급한 나머지 오랜성에서 아덴성 마을로 텔레포트해 전장으로 직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한 것은 내복단의 결사적인 저항이었다. 인간 바리케이드를 형성한 내복단은 화살받이가 돼 죽으면서 자신들의 시체로 마을 입구를 겹겹이 막았다. 시체 때문에 걷기조차 어려워진 DK연합군은 바츠동맹군 궁수 부대와 위저드 부대의 집중 포화를 받고 쓰러져갔다. DK연합군이 전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이 제네시스혈맹의 칼리츠버그 총군주가 각인실에서 성의 점령을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PC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사용자들이 목격됐고 게임 안에서는 아덴성의 메인 홀에서 내복단들이 춤을 추었다. 이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됐다. 이 날의 혁명은 모든 리니지 월드에 태양처럼 빛났다.
아덴 공성전은 바츠 해방전쟁의 분수령이었다. ‘리니지2’ 월드의 정치적 중심지인 아덴성을 점령한 것을 기점으로 바츠동맹군은 빠른 속도로 분열하며 타락해갔다.
분열의 씨앗은 전승(戰勝)의 과실을 누가 가질 것인가였다. 예컨대 아덴 공성전의 성공으로 리벤지혈맹은 오랜성을 차지했고, 제네시스혈맹은 아덴성을 소유하게 됐다. 그런데 처음부터 바츠동맹군의 선봉을 맡아 많은 희생을 치른 붉은혁명혈맹은 얻은 것이 없었다. 아덴성 각인을 함으로써 아덴성을 소유하게 된 제네시스혈맹은 바츠동맹군이라고는 하지만 불과 3주 전까지 지배연합군의 일원이었다.
제네시스혈맹은 제네시스혈맹대로 가장 병력이 많은 만큼 고생은 자기네가 다 했는데 이전에 지배연합군에 속해 있었다는 묘한 처지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억울해 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는 납득해도 심정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데 따른 불만이 각 혈맹마다 쌓이기 시작했다.
혁명군의 분열과 역전
DK연합군이 아덴성에 이어 기란성마저 빼앗기고 오만의 탑 9층으로 퇴각하자 승리의 전리품을 둘러싼 각 혈맹간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 무렵 바츠동맹군 소속의 혈맹들이 약칭 ‘용던’이라는 안타라스의 동굴에서 부분적인 통제와 오토 행위를 한다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각 혈맹의 총군주들은 용던이라는 사냥터에 독점구역을 확보함으로써 성의 소유를 둘러싼 혈맹원들의 불만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바츠동맹군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애초에 바츠동맹군이 외친 ‘정의와 자유’의 구호는 매우 지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의 정의는 일반 사용자를 죽이고 오토 프로그램을 돌리며 게임의 룰을 일탈한 지배혈맹에 대한 정의였다. 또 이때의 자유는 어떤 사냥터든지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고 누구나 사냥할 수 있다는 의미의 자유였다.
그런 대의명분을 내세운 바츠동맹군이 지배혈맹과 똑같은 통제와 오토, 척살을 행했다. 그것은 그들을 지지해온 일반 사용자들의 신뢰를 뿌리째 배신하는 것이었다. 바츠동맹군의 전쟁 혈맹들은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아직 완전히 섬멸되지 않은 적 앞에서 자중지란에 빠지고 말았다. 수세에 몰려 있던 DK연합군은 이때 새로 패치(patch)된 ‘오만의 탑’에 숨어 은인자중 힘을 기르고 있었다.
적의 무서운 잠재력을 외면한 바츠동맹군은 승리에 도취해 사분오열했다. 붉은혁명혈맹은 어제까지 동지였던 리벤지혈맹과 전쟁에 돌입했으며 곧이어 제네시스혈맹과도 전면전에 들어갔다. 그 결과 수적으로 열세에 몰린 붉은혁명혈맹은 과거의 주적이던 DK연합군과 제휴함으로써 바츠 해방에 참전한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4혈도 나쁘지만 반4혈도 나쁘다”는 공감대가 바츠 서버에 유포되면서 아덴 공성전까지 일사불란하게 유지된 단합은 무너졌다. 내복단 역시 내복단을 빙자한 강도들, 즉 ‘제조’들이 등장하면서 도덕성을 믿을 수 없는 경계와 의혹의 대상이 됐다.
끝나지 않은 바츠 해방전쟁
바츠동맹군의 타락과 분열로 전세는 역전됐다. DK연합군은 조금씩 조금씩 빼앗긴 성들을 모두 탈환했으며 혁명군의 공성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그리하여 해가 바뀐 2005년 1월27일 DK혈맹은 다시 무제한 척살령을 발동했고 ‘리니지2’의 일반 사용자들은 바츠 해방의 꿈이 비참하게 좌절됐음을 확인해야 했다.
2005년 6월 현재 바츠 서버는 해방전쟁 이전의 참상으로 되돌아왔다. 사냥터에서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하루 저녁에 700명이 넘는 사용자가 지배혈맹에 의해 살해되고, 산발적인 소요가 일어나고, 그 결과 DK연합군이 사냥터의 오토 행위를 통해 만들어내는 바츠 서버의 아덴 가격은 폭등한다.
그러나 바츠 해방전쟁 스토리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은, 미약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하는 게임이 바츠 해방전쟁 절정기의 그 숭고한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체,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살아 있는 물건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숭고란 뭔가 고귀하고 성스럽고 영웅적인 것이 자신의 눈앞에 현전(現前)하고 있다는 충격의 체험이다. 그것은 묘사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천지창조의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리니지2’의 스토리는 날마다 놀랍고 비일상적이며 충격적인 순간, 묘사 불가능한 것이 일어나는 순간의 미학, 숭고의 미학에 의해 지배된다.
2005년 5월의 어느 날, 사용자들은 아직도 저항하고 있는 극소수 혈맹 가운데 한 파티가 용의 계곡에서 안타라스의 동굴로 출정하는 것을 본다. 시간은 이미 9시가 넘은 아침이다. 그 파티의 주인공들은 모두 밤을 새웠다. 수백명의 DK혈맹원과 벌인 간밤의 싸움에서 많은 혈맹원의 캐릭터가 더는 활동할 수 없는 봉인 상태에 이르렀다.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D급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수한 죽음으로 레벨이 30 이상 다운돼 무의미할 정도로 공격력이 낮은 무기를 들고, 옥쇄할 수밖에 없는 전쟁터로 묵묵히 떠나가는 것이다.
함께 파티 사냥을 하며 성장한 친구들은 대개 현실과 타협했다. 친구들은 저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친목혈’을 꾸려 군주가 되고 게임 안에서 편안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지배권력에 대한 저항의 길을 택한 혈맹원들은 사냥터도 없이 풍찬노숙하며 사방에서 공격받고 악명을 뒤집어쓴다. 외로운 나머지 따뜻한 말 한마디에 쉽게 정을 주었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외로운 전사들이 묵묵히 전쟁터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리니지2’의 사용자만이 이해하고 감지할 수 있는 ‘숭고’다. 이러한 순간 ‘리니지2’의 스토리는 위엄을 갖춘 희생자들, 최후에 승리하는 패배자들, 타락한 현실에 대해 선(善)을 주장하는 무법자들의 형이상학적이고 영웅적인 진실을 전달한다.
숭고한 체험, 귀환하지 않은 영웅들
일찍이 조셉 켑벨은 많은 스토리에서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영웅이 평범한 인간 세상으로 귀환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웅은 평범한 세계에서 ‘낯설고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 통과제의의 성격을 갖는 고통스런 체험을 한다. 그리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그 세계로부터 어떤 물질적, 정신적 전리품을 들고 다시 평범한 세계로 돌아와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해준다.
그러나 이 같은 ‘분리-통과제의-귀환(seperation-initiation-return)’의 구도가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신비하고 정복되지 않는 힘과 불멸하는 우주의 그림자를 맛본 영웅은 삶을 너무 많이 보고 너무 깊이 본다. 그래서 그는 안일무사한 생활인의 세계, 평범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바츠 해방전쟁의 스토리를 체험한 상당수 ‘리니지2’ 사용자야말로 귀환하지 않는 영웅이다. 그 전쟁은 현실 시간으로는 12개월에 불과하지만 30분이 하루인 ‘리니지2’의 가상현실에서는 무려 48년 동안 계속됐다. 서버를 초월해 모든 ‘리니지2’ 사용자가 숨죽이고 전쟁의 추이를 관찰했으며 그 고귀한 희생은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고 그 허무한 결말은 사용자들 사이에 절망과 냉소주의를 유포했다.
온라인 게임 스토리만이 줄 수 있는 이 같은 서사적 감동과 사상적 깊이를 체험한 사람들은 두번 다시 예전과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들은 ‘폐인’이라는 조롱을 웃어넘기며 온라인 게임이 만든 매트릭스로 날마다 들어간다. 이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이 어떻게 현실로 돌아와 세계를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융합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깊이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끝)
창의력을 억누르기 보다는 키워줄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에 대한 켄 로빈슨의 흥미롭고 감동적인 강연입니다.
About Sir Ken Robinson
'Out of Our Minds: Learning to be creative' 의 저자, 교육과 비즈니스 혁신 전문가,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
schools kill creativity
Ken Robinson
Good morning. How are you? It's been great, hasn't it? I've been blown away by the whole thing. In fact, I'm leaving. (Laughter) There have been three themes, haven't there, running through the conference, which are relevant to what I want to talk about. one is the extraordinary evidence of human creativity in all of the presentations that we've had and in all of the people here. Just the variety of it and the range of it. The second is that it's put us in a place where we have no idea what's going to happen, in terms of the future. No idea how this may play out.
I have an interest in education -- actually, what I find is everybody has an interest in education. Don't you? I find this very interesting. If you're at a dinner party, and you say you work in education -- actually, you're not often at dinner parties, frankly, if you work in education. (Laughter) You're not asked. And you're never asked back, curiously. That's strange to me. But if you are, and you say to somebody, you know, they say, "What do you do?" and you say you work in education, you can see the blood run from their face. They're like, "Oh my God," you know, "Why me? My one night out all week." (Laughter) But if you ask about their education, they pin you to the wall. Because it's one of those things that goes deep with people, am I right? Like religion, and money and other things. I have a big interest in education, and I think we all do. We have a huge vested interest in it, partly because it's education that's meant to take us into this future that we can't grasp. If you think of it, children starting school this year will be retiring in 2065. Nobody has a clue -- despite all the expertise that's been on parade for the past four days -- what the world will look like in five years' time. And yet we're meant to be educating them for it. So the unpredictability, I think, is extraordinary.
And the third part of this is that we've all agreed, nonetheless, on the really extraordinary capacities that children have -- their capacities for innovation. I mean, Sirena last night was a marvel, wasn't she? Just seeing what she could do. And she's exceptional, but I think she's not, so to speak, exceptional in the whole of childhood. What you have there is a person of extraordinary dedication who found a talent. And my contention is, all kids have tremendous talents. And we squander them, pretty ruthlessly. So I want to talk about education and I want to talk about creativity. My contention is that creativity now is as important in education as literacy, and we should treat it with the same status. (Applause) Thank you. That was it, by the way. Thank you very much. (Laughter) So, 15 minutes left. Well, I was born -- no. (Laughter)
I heard a great story recently -- I love telling it -- of a little girl who was in a drawing lesson. She was six and she was at the back, drawing, and the teacher said this little girl hardly ever paid attention, and in this drawing lesson she did. The teacher was fascinated and she went over to her and she said, "What are you drawing?" And the girl said, "I'm drawing a picture of God." And the teacher said, "But nobody knows what God looks like." And the girl said, "They will in a minute." (Laughter)
When my son was four in England -- actually he was four everywhere, to be honest. (Laughter) If we're being strict about it, wherever he went, he was four that year. He was in the Nativity play. Do you remember the story? No, it was big. It was a big story. Mel Gibson did the sequel. You may have seen it: "Nativity II." But James got the part of Joseph, which we were thrilled about. We considered this to be one of the lead parts. We had the place crammed full of agents in T-shirts: "James Robinson IS Joseph!" (Laughter) He didn't have to speak, but you know the bit where the three kings come in. They come in bearing gifts, and they bring gold, frankincense and myrhh. This really happened. We were sitting there and I think they just went out of sequence, because we talked to the little boy afterward and we said, "You OK with that?" And he said, "Yeah, why, was that wrong?" They just switched, that was it. Anyway, the three boys came in, four-year-olds with tea towels on their heads, and they put these boxes down, and the first boy said, "I bring you gold." And the second boy said, "I bring you myrhh." And the third boy said, "Frank sent this." (Laughter)
What these things have in common is that kids will take a chance. If they don't know, they'll have a go. Am I right? They're not frightened of being wrong. Now, I don't mean to say that being wrong is the same thing as being creative. What we do know is, if you're not prepared to be wrong, you'll never come up with anything original. If you're not prepared to be wrong. And by the time they get to be adults, most kids have lost that capacity. They have become frightened of being wrong. And we run our companies like this, by the way. We stigmatize mistakes. And we're now running national education systems where mistakes are the worst thing you can make. And the result is that we are educating people out of their creative capacities. Picasso once said this: he said that all children are born artists. The problem is to remain an artist as we grow up. I believe this passionately: that we don't grow into creativity, we grow out of it. Or rather, we get educated out if it. So why is this?
I lived in Stratford-on-Avon until about five years ago. In fact, we moved from Stratford to Los Angeles. So you can imagine what a seamless transition that was. (Laughter) Actually, we lived in a place called Snitterfield, just outside Stratford, which is where Shakespeare's father was born. Are you struck by a new thought? I was. You don't think of Shakespeare having a father, do you? Do you? Because you don't think of Shakespeare being a child, do you? Shakespeare being seven? I never thought of it. I mean, he was seven at some point. He was in somebody's English class, wasn't he? How annoying would that be? (Laughter) "Must try harder." Being sent to bed by his dad, you know, to Shakespeare, "Go to bed, now," to William Shakespeare, "and put the pencil down. And stop speaking like that. It's confusing everybody." (Laughter)
Anyway, we moved from Stratford to Los Angeles, and I just want to say a word about the transition, actually. My son didn't want to come. I've got two kids. He's 21 now; my daughter's 16. He didn't want to come to Los Angeles. He loved it, but he had a girlfriend in England. This was the love of his life, Sarah. He'd known her for a month. Mind you, they'd had their fourth anniversary, because it's a long time when you're 16. Anyway, he was really upset on the plane, and he said, "I'll never find another girl like Sarah." And we were rather pleased about that, frankly, because she was the main reason we were leaving the country. (Laughter)
But something strikes you when you move to America and when you travel around the world: every education system on earth has the same hierarchy of subjects. Every one. Doesn't matter where you go. You'd think it would be otherwise, but it isn't. At the top are mathematics and languages, then the humanities, and the bottom are the arts. Everywhere on Earth. And in pretty much every system too, there's a hierarchy within the arts. Art and music are normally given a higher status in schools than drama and dance. There isn't an education system on the planet that teaches dance every day to children the way we teach them mathematics. Why? Why not? I think this is rather important. I think math is very important, but so is dance. Children dance all the time if they're allowed to, we all do. We all have bodies, don't we? Did I miss a meeting? (Laughter) Truthfully, what happens is, as children grow up, we start to educate them progressively from the waist up. And then we focus on their heads. And slightly to one side.
If you were to visit education, as an alien, and say "What's it for, public education?" I think you'd have to conclude -- if you look at the output, who really succeeds by this, who does everything that they should, who gets all the brownie points, who are the winners -- I think you'd have to conclude the whole purpose of public education throughout the world is to produce university professors. Isn't it? They're the people who come out the top. And I used to be one, so there. (Laughter) And I like university professors, but you know, we shouldn't hold them up as the high-water mark of all human achievement. They're just a form of life, another form of life. But they're rather curious, and I say this out of affection for them. There's something curious about professors in my experience -- not all of them, but typically -- they live in their heads. They live up there, and slightly to one side. They're disembodied, you know, in a kind of literal way. They look upon their body as a form of transport for their heads, don't they? (Laughter) It's a way of getting their head to meetings. If you want real evidence of out-of-body experiences, by the way, get yourself along to a residential conference of senior academics, and pop into the discotheque on the final night. (Laughter) And there you will see it, grown men and women writhing uncontrollably, off the beat, waiting until it ends so they can go home and write a paper about it.
Now our education system is predicated on the idea of academic ability. And there's a reason. The whole system was invented -- around the world, there were no public systems of education, really, before the 19th century. They all came into being to meet the needs of industrialism. So the hierarchy is rooted on two ideas. Number one, that the most useful subjects for work are at the top. So you were probably steered benignly away from things at school when you were a kid, things you liked, on the grounds that you would never get a job doing that. Is that right? Don't do music, you're not going to be a musician; don't do art, you won't be an artist. Benign advice -- now, profoundly mistaken. The whole world is engulfed in a revolution. And the second is academic ability, which has really come to dominate our view of intelligence, because the universities designed the system in their image. If you think of it, the whole system of public education around the world is a protracted process of university entrance. And the consequence is that many highly talented, brilliant, creative people think they're not, because the thing they were good at at school wasn't valued, or was actually stigmatized. And I think we can't afford to go on that way.
In the next 30 years, according to UNESCO, more people worldwide will be graduating through education than since the beginning of history. More people, and it's the combination of all the things we've talked about -- technology and its transformation effect on work, and demography and the huge explosion in population. Suddenly, degrees aren't worth anything. Isn't that true? When I was a student, if you had a degree, you had a job. If you didn't have a job it's because you didn't want one. And I didn't want one, frankly. (Laughter) But now kids with degrees are often heading home to carry on playing video games, because you need an MA where the previous job required a BA, and now you need a PhD for the other. It's a process of academic inflation. And it indicates the whole structure of education is shifting beneath our feet. We need to radically rethink our view of intelligence.
We know three things about intelligence. one, it's diverse. We think about the world in all the ways that we experience it. We think visually, we think in sound, we think kinesthetically. We think in abstract terms, we think in movement. Secondly, intelligence is dynamic. If you look at the interactions of a human brain, as we heard yesterday from a number of presentations, intelligence is wonderfully interactive. The brain isn't divided into compartments. In fact, creativity -- which I define as the process of having original ideas that have value -- more often than not comes about through the interaction of different disciplinary ways of seeing things.
The brain is intentionally -- by the way, there's a shaft of nerves that joins the two halves of the brain brain called the corpus callosum. It's thicker in women. Following off from Helen yesterday, I think this is probably why women are better at multi-tasking. Because you are, aren't you? There's a raft of research, but I know it from my personal life. If my wife is cooking a meal at home -- which is not often, thankfully. (Laughter) But you know, she's doing -- no, she's good at some things -- but if she's cooking, you know, she's dealing with people on the phone, she's talking to the kids, she's painting the ceiling, she's doing open-heart surgery over here. If I'm cooking, the door is shut, the kids are out, the phone's on the hook, if she comes in I get annoyed. I say, "Terry, please, I'm trying to fry an egg in here. Give me a break." (Laughter) Actually, you know that old philosophical thing, if a tree falls in the forest and nobody hears it, did it happen? Remember that old chestnut? I saw a great t-shirt really recently which said, "If a man speaks his mind in a forest, and no woman hears him, is he still wrong?" (Laughter)
And the third thing about intelligence is, it's distinct. I'm doing a new book at the moment called "Epiphany," which is based on a series of interviews with people about how they discovered their talent. I'm fascinated by how people got to be there. It's really prompted by a conversation I had with a wonderful woman who maybe most people have never heard of, she's called Gillian Lynne, have you heard of her? Some have. She's a choreographer and everybody knows her work. She did "Cats," and "Phantom of the Opera." She's wonderful. I used to be on the board of the Royal Ballet, in England, as you can see. Anyway, Gillian and I had lunch one day and I said, "Gillian, how'd you get to be a dancer?" And she said it was interesting, when she was at school, she was really hopeless. And the school, in the '30s, wrote to her parents and said, "We think Gillian has a learning disorder." She couldn't concentrate, she was fidgeting. I think now they'd say she had ADHD. Wouldn't you? But this was the 1930s, and ADHD hadn't been invented at this point. It wasn't an available condition. (Laughter) People weren't aware they could have that.
Anyway, she went to see this specialist. So, this oak-paneled room And she was there with her mother, and she was led and sat on a chair at the end, and she sat on her hands for 20 minutes while this man talked to her mother about all the problems Gillian was having at school. And at the end of it -- because she was disturbing people, her homework was always late, and so on, little kid of eight -- in the end, the doctor went and sat next to Gillian and said, "Gillian, I've listened to all these things that your mother's told me, and I need to speak to her privately." He said, "Wait here, we'll be back, we won't be very long." and they went and left her. But as they went out the room, he turned on the radio that was sitting on his desk. And when they got out the room, he said to her mother, "Just stand and watch her." And the minute they left the room, she said, she was on her feet, moving to the music. And they watched for a few minutes and he turned to her mother and said, "Mrs. Lynne, Gillian isn't sick, she's a dancer. Take her to a dance school."
I said, "What happened?" She said, "She did. I can't tell you how wonderful it was. We walked in this room and it was full of people like me. People who couldn't sit still. People who had to move to think." Who had to move to think. They did ballet, they did tap, they did jazz, they did modern, they did contemporary. She was eventually auditioned for the Royal Ballet School, she became a soloist, she had a wonderful career at the Royal Ballet. She eventually graduated from the Royal Ballet School and founded her own company, the Gillian Lynne Dance Company, met Andrew Lloyd Weber. She's been responsible for some of the most successful musical theater productions in history, she's given pleasure to millions, and she's a multi-millionaire. Somebody else might have put her on medication and told her to calm down.
Now, I think -- (Applause) What I think it comes to is this: Al Gore spoke the other night about ecology, and the revolution that was triggered by Rachel Carson. I believe our only hope for the future is to adopt a new conception of human ecology, one in which we start to reconstitute our conception of the richness of human capacity. Our education system has mined our minds in the way that we strip-mine the earth: for a particular commodity. And for the future, it won't serve us. We have to rethink the fundamental principles on which we're educating our children. There was a wonderful quote by Jonas Salk, who said, "If all the insects were to disappear from the earth, within 50 years all life on Earth would end. If all human beings disappeared from the earth, within 50 years all forms of life would flourish." And he's right.
What TED celebrates is the gift of the human imagination. We have to be careful now that we use this gift wisely, and that we avert some of the scenarios scenarios that we've talked about. And the only way we'll do it is by seeing our creative capacities for the richness they are, and seeing our children for the hope that they are. And our task is to educate their whole being, so they can face this future. By the way -- we may not see this future, but they will. And our job is to help them make something of it. Thank you very much.